『칼사사 게시판』 31259번
제 목:(아처) 색마이야기
올린이:achor (권아처 ) 99/01/31 09:45 읽음: 48 관련자료 있음(TL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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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내가 색마이지 않은 이유
1999년 1월 28일 16시 20분 경은 내게 있어서 색다른 날이
었단다. 그 날 그녀와 드디어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거든. ^^
내가 그녀를 처음 본 건 이곳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했을
무렵이었어. 특별히 할 일이 없어 권태로운 지경이었는데 그
럴 때 괜찮은 여자라도 같이 일한다면 참 좋겠다란 생각을
하며 괜히 주위를 둘러보곤 그랬거든. 다들 마음에 썩 내키
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녀를 처음 봤던 거야. 굳이 스타일을
말하진 않겠지만 정말 끝내 줬지. 허허. ^^;;
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그녀가 바로 우리 사무실 맞은편
에 있던 거였어. 운만 좋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만날 수
있었지. 난 그녀에 관한 정보를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고,
그녀가 나와 같은 23살이고, 카톨릭대학교 행정학과 재학중
이며, 현재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
냈지. ^^* 그녀의 이름은 송 민 주 (가명 아님 --;).
언제나처럼 기회를 엿보며 접근방법을 혼자 꿍꿍거리며 모
색하고 있었는데 잘 진행되지 않았었어. 보다 정보를 알아봤
더니만 그녀는 예전에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별 필요성을 느
끼지 못하고 차 버렸다고 하더라구. 남자에 관심이 별로 없
는 여자란 거야. --+
그런데 이미 그 즈음은 내가 공개적으로 그녀를 노리고 있
다는 선언을 한 직후였거든. 우리 사무실 모든 사람이 나를
응원하고 있었던 거였어.
그런 상황에서 쉽게 포기해 버리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
난 포기하고 말았었어. 왜냐하면 껄떡거림의 전망도 불투명
하고, 게다가 이런저런 꾸사리로 짜증만빵이었는데다가 결정
적으로 난 이런저런 고민들에 휩싸여 있었거든.
예전 같았으면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호감의 눈빛을
보냈었는데 그 후로는 말 그대로 완전 쌩이었어. 그러던 중
에 1999년 1월 28일이 다가왔던 거야!
그 날도 권태롭게 앉아서 핑클 사진이나 보고 있었는데 서
무주임이 갑자기 날 급하게 찾는 거였어. 무슨 일인가 하고
가 봤더니, 허허, 그녀가 거기 있었던 거지.
무슨 문서를 복사하러 왔다는 거였어. 그녀가 혼자 해도
될 일을 굳이 서무주임이 날 불러서 내게 기회를 주신 거였
지. 앞서 말했듯이 모든 사람들이 내가 그녀를 노리고 있었
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. 허허. ^^;;
물론 난 친절히 복사를 해주었고, 그녀와 처음으로 대화를
나눴어. 그녀를 처음 만난 지 4개월 가량 흐른 그때서야.
대화를 잘 기록해 두었는데, 이런 거였어.
"복사 다 하실 거예요?"
"예. 제가 할께요."
"아네요. 됐어요."
......
"이거 가져가셔야죠?"
"서무주임님 드리세요."
기억할 지 모르겠지만 그 날 저녁은 눈이 내렸던 날이었
어. 꽤나 추웠던 날이었지. 그 날도 아침에 난 지각해서 오
전에는 윗통을 다 벗고 얼차려를 받았었거든. 그래서 덥다는
걸 느끼면서도 옷을 두툼히 입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도 모
르겠지만 어쨌든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난 뒤에 내 이마에서
는 땀이 흐르고 있더라구. 게다가 사람들은 내 얼굴이 빨개
졌다고 했었고. 허허. ^^*
그 때 난 내 자신이 참 순진하다는 생각을 했었어. 사실
그렇잖아. 여자와 얘기 한 번 했다고 얼굴 빨개지고, 땀을
비실비실 흘리다니. 크흐.
아직도 기억이 선명해. 그녀와 불과 몇 십 센치 거리를 둔
채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나눴던 대화. 그녀가 살포시 웃으
며 말했던 모습이 생생해.
그 후로 아직 그녀를 다시 만나진 못했는데 말야 다시 보
게 된다면 크흐, 이제는 자연스럽게 얘기 나눌 수 있을 것도
같아.
나 참 순진하지 않니? 이런 내가 색마라고? 말도 안 돼!
2. 내가 색마인 이유
이건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만 이제서야 말을 꺼
내는 것 뿐이야. 내 허물을 스스로 떠벌리는 듯한 느낌이 들
어. --+
난 말이지, 제한된 보기 내에서 선택하는 거에 능숙한 것
같아.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만약 미팅에 나갔다고 생각해
봐. 그런데 상대방이 모조리 폭탄이었던 거야. 친구들 모두
허탈해 하고 있을 때, 난 그 때도 그 중에서 괜찮은 한 명을
꼭 찍어내고 말야. 절대적 기준이란 게 없는 거야.
지난 3년을 통해 게시판에 가끔 했던 얘기지만 난 가게에
서 물건을 사면서 억울하단 생각을 하기도 해. 만약 바지를
산다면 난 세상 모든 바지를 한 데 놓고 그 모든 것을 대상
으로 내가 좋아하는 단 하나를 선택하고 싶거든. 그런데 현
실적으로 가게에 있는 물건은 한정되어 있잖아. 가게주인이
선택해 놓은 것들 중에서 내가 선택한 것, 그건 어쩐지 불완
전해 보여.
여자도 그런 것 같아. 세상 모든 여자를 내 앞에 일렬로
세워 놓고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내게 가장 어울리는 여자를
골라 결혼하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는 일이잖아. 그렇다고
불완전한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말야.
이렇게 불완전한 선택의 폭 속에서 불완전한 선택을 계속
하다가 결국은 아무 선택도 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해서 불
안해지기도 해.
그렇지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절세미녀를 만난다는 내
손금. 허허. ^^;; 이런 선택 끝에 종국에는 세상에서 가장
나와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거란 예언이 내 손바닥에 새겨져
있는 거야! 부럽지? --;;
98-9220340 건아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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