『칼사사 게시판』 30674번
제 목:(아처) 문화일기 107 시인 마태오
올린이:achor (권아처 ) 98/11/16 21:51 읽음: 14 관련자료 있음(TL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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+ 시인 마태오, 박상우, 1992, 세계사, E7/10
"집에 라면이 떨어졌네. 사다놔야겠구나."
내일 사도 괜찮다는 어머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섰다.
왠지 바깥 바람이 무척이나 쐬고 싶었다.
집을 나서자마다 입에 담배를 한 대 물곤
서늘한 밤의 공기를 느끼기 시작했다.
아버님 차 위로 낙엽이 떨어져 있었다.
바다... 난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.
저 작열하는 뜨거운 여름날의 바다가 아닌
뿌연 안개를 가득 안은 태고적 신비를 간직하고 있어 보이는 그런 바다...
지난 여름이 시작하던 날,
그 새벽 바다는 그러했으리라...
과연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할까...
차라리 내 젊음이 70,80년대에 존재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.
이 이기적이고 배반적인 시대에
나 또한 위선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
오히려 정의를 위해 生을 바치리라.
모든 게 혼돈으로 가득차 있던 태고적 신비로움을 눈으로 보고 싶다.
만물이 붉게 끓어오르고, 세상은 뿌연 안개 속에 가려져 있을 때.
난 조용히 명상을 하며 모든 걸 새로이 시작하고 싶다.
그렇지만 난 90년대 삶이기에
그처럼 당당하게 시대에 맞설 수가 없다.
난 위선자요, 배신자가 될 수밖에 없다.
휘양찬란한 네온사인이 흐르는 이 거리에서
무슨 놈의 저항이며, 투쟁이란 말인가.
내 청춘은 이미 오랜지빛으로 물들어버린 것을.
자아와 시대의 어긋남에 시를 포기하는 그처럼 난 살 수 없다.
내면의 고뇌로 삶을 포기할 용기가 내겐 없다.
난 간사하고, 기회주의적인 것을.
"모르면서도 가야 하고 알면서도 가야 하는 길-그것이 바로 시대의 길"이라면
나 역시 묵묵히 걸어나가리라.
'살아남은 자의 슬픔'을 노래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처럼
묵묵히 어둠의 길을 그림자로 걸어나가리라.
변화를 허용하지 않고, 흐름을 유연하게 하지 않는 것.
다 포기해 버리리라.
그들이 투쟁했던 시대에 아이러니한 그리움을 갖고
그들이 동경했던 시대에 아이러니한 저항심을 갖고
묵묵히 걸어나가리라.
98.11.16 20:40 바다, 뿌연 안개, 그리고 시대...
뿌연 안개 속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는 바다를 보고 있는
듯한 기분이다. 시대 속 人間. 과연 어떻게 살아야할까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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